내소사 템플스테이에 다녀 온 적이 있었는데요. 템플스테이 마지막 날, 참여자들이 달밤에 등을 하나씩 들고 탑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스님이 버지니아 사티어의 ‘다섯 가지 자유’를 읽어 주었습니다. 불경이 아니어서 더욱 신선했는데요.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면서 ‘지금, 여기’가 확연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코끝을 스치던 공기, 탑을 돌던 사람들의 얼굴, 허공에 떠 있던 달,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꽃무릇, 탑의 그림자까지 선명한 윤곽으로 도드라져 다가왔습니다. ‘다섯 가지 자유’가 뭔지 궁금하시죠?
<다섯 가지 자유>
그래야만 하는 것, 그랬던 것, 앞으로 그렇게 될 것 대신에
지금 여기에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자유
느끼고 생각해야만 하는 것 대신에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그대로를 말할 수 있는 자유
느껴야만 하는 것을 느끼는 대신에
지금 느껴지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자유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 허락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에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자유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안전함’만을 선택하는 대신에
자기를 위해서 모험을 할 수 있는 자유
[Satir et al.(1991). 한국버지니아사티어연구회 역(2000). p.77]
그때 이 구절이 좋아서 집에 돌아온 뒤에 따로 찾아서 두었는데요. 사티어가 말하는 요지가 결국 마음챙김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마음챙김의 핵심은 판단하지 않으면서 알아차리는 것인데요. 지금 느껴지는 불편한 기분, 생각들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뭔가 올라올 때, 그것을 누르거나 억압하는 대신 그것을 바라봅니다. "바라보면 사라진다."라는 것이 마음챙김의 원리인데요. (클릭☞)ACT에서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것에 ‘공간을 내어주면’ 수용하는 만큼 안개가 걷히듯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저는 ‘겹의 허용’에 관심이 많은데요. ‘겹의 허용’이란 예를 들어 A라는 상황으로 인해서 마음이 불편해졌을 때, A에 대해 아무리 허용하려고 해도 분노가 올라와서 쉽게 허용이 안 될 때는, 그냥 ‘허용이 안 되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A로 인해 ‘불편해진 내 마음에 대해서는 충분히 허용’하는 건데요.
실제로 트라우마(PTSD) 상황을 겪게 될 때, 그것 자체에 대해서는 허용이 안 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불편한 내 마음을 허용할 때는 회복 수치가 올라갔습니다.
요즘 만나는 내담자에게 ‘겹의 허용’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겪었던 상처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러한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용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로 인해 불편하고 아파하는 내 마음을 허용하니, 훨씬 잠들기가 수월해졌다고 하는데요.
겹의 허용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정리된 논문이 없어서, 앞으로 계속 공부해 나가고, 여러 사례 속에서 살펴보아야 할 주제가 되겠지만, 회복탄력성에 있어서는 꽤 중요한 지점이 될 듯 싶습니다.
뭔가 마음이 엉켜 있을 때는 아래와 같은 지점을 알아차리면 보시면 어떨까요?
"올라오는 마음에 충분히 공간을 내어주기"
"그럴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허용할 수 없어도, 그것으로 인해 올라오는 내 마음을 충분한 사랑과 연민으로 허용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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