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N] 사람은 어디에서 내적 추동력을 얻을까? (1)

사람들이 종종 “마음밑돌이 무슨 뜻이에요?”라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요. 답하기에 살짝 고민이 됩니다. 왜냐하면 꿈에서 본 글자거든요.

 

꿈에서 어떤 형상을 봤냐면 사람의 깊은 중심에는 응축된 덩어리(cluster) 같은 게 있는데, 이러한 밑돌이 응어리처럼 똬리 틀고 있어서 사람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막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중력감(밑돌)이 있기 때문에 존재의 지반을 잡아주는 무게중심 역할을 하는구나, 란 인사이트를 얻었는데요. 마치 풍선이 날아가지 않게 받히는 역할을 하는데, 풍선 입장에선 그것이 억제력처럼 느껴져서 내던져 버리고 싶지만, 참자기(Self) 입장에선 생명력을 표현하려면 개체의 개성(중력)이 필요하기에(펜이 있어야 글씨를 쓰듯이) 밑돌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침전물이자 짐이자 개성이자 보석이자 생명력에 가까운 에너지라는 것을 느꼈거든요.

 

이러한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싶은데, 언어화하려고 할 때마다 한계를 느끼네요. 머릿속 번역기를 한 번 돌려야 해서, 전달하고 싶은 지점은 축소되고 에고(ego)의 프레임에 근거해서 글로 내놓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글자에도 파동이 있고, 전달받는 분들의 지감력의 영역대에 따라서 외려 저보다 한 차원 높은 지점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아무튼 오늘은 기왕 5차원적인 이미지로 출발했으니, 그러한 이야기를 죽 해 볼까 해요. 며칠 전에는 꿈에 융이 나왔는데 어린아이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퇴행을 하셨냐고 물으니 “코로나 때문에 세상이 어수선하다.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오히려 과거 회귀 본능이 살아나지. 복고가 왜 유행이겠나? 미래에 불안함을 느끼니 퇴행하는 거지.”라고 답하는데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메모해 두었습니다.

 

사실 꿈 분석도 그래요(다음엔 꿈 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꿈에 등장한 융도 단순한 융이 아니고, 내면의 어떤 지혜로움에 가까운 메타포일 테고, 그가 어린아이로 꿈에 등장했다는 것도 지금 나의 욕구와 감정을 반영하고 있겠죠. 한 가지 명료하게 느껴진 건 사람이 불안해질수록 과거로 뒷걸음질 치게 되고, 그것이 집단 무의식으로 흘러가서 어떤 유행이나 트랜드를 만드는데, 마치 아이가 세상 밖 여행을 떠났다가 두려움을 느끼고 엄마 품에 다시 돌아와 안기고 싶어하듯이 자연스럽게 복고(퇴행)의 수순을 밟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아무튼 말이죠. 오늘 아침에 기사를 보니까 우리나라 자살률이 치솟아서 여전히 OECD 국가 중 1위더라고요. 우리가 알려진 분들의 죽음에만 주목해서 그렇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마음의 차디찬 시멘트 바닥을 느끼고 생명을 끊는 분들이 있고, 요즘 코로나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과 마음의 우울감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분들이 하루 평균 38명에 달하는데 전반적으로 저 위의 C 단계에서 A 단계로 가 버린 분들이 많아졌다는 걸 느낍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내적 균형(C)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적당한 불순물과 적당한 정화력을 가지고 살아가죠. 그러다가 에고(ego)가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거나 기쁨을 느끼면 B 단계로 가는데 이러한 상태도 가변성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큰 행복도 곧 자신의 항상성(C) 수준으로 돌아가게 되고(Diener & Lucas, 2000), 상황이 에고(ego) 입장에서 불리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면 A(울혈이 뭉친 단계)로 가 버리죠.

 

사실 A, B, C의 단계를 초월해서 참자기와 접촉할 때(이 모든 단계를 어항 속 물고기 보듯이 참자기의 입장에서 마음챙김하면) 긍휼한 행복감을(있는 듯 없는 듯 홀가분한 상태-세로토닌이 기분 좋게 흐르는 자리를)느끼고, 이 지점에서 직관적 아이디어가 흘러나오는 건 여러 연구에서도 증명되었죠(Dijksterhuis & van Olden, 2006).

 

그런데 제가 좀 답답하게 느낀 점은 사람은 현상계에서 살기 위해서는 자기 방어막을 가질 수밖에 없고, 참자기에 이르는 과정으로 나아가려면  에고(ego)의 중력감이 가붓해져야 하는데

 

그러니까 지금 현상계의 생활은 회피하고, 참자기의 상태로만 가 버리려고만 하면 도리어 삶과의 분리감만 초래할 뿐이라는 거죠.

 

참자기가 치유의 근원이고, 돌아갈 자리이지만 현상계에서 먹고 입고 벌고 살아내려면, 그러니까 한 사람이 건강한 일상 수행을 해 내려면 적절한 스트레스와 중력, 자기 정화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위 그래프에서 보듯이 정서적 각성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된다고 할 때, 왼쪽 극단은 멍한 상태에 가깝고(참자기와 유사한 명상 돌입 단계) 오른쪽 극단은 신경쇠약(번아웃 직전의 단계)를 보여줍니다. 사람이 생산적인 일을 하고 도전하고 부딪히고 다시 일어서려면 저 초록 중간 지대만큼 탄력 있는 각성도가 있어야 자신의 삶을 회피하지 않고 잘 살아낼 수 있다는 거죠. 참자기만큼이나 중력(밑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J 교수님과 통화하다가 “사람은 그 자신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하는지' 들여다보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하셨을 때 전율을 느낀 건 이런 물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고안하고 있는 과정이 ARN인데요. 수용(Acceptance)-->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진정 필요로 하는 것(Needs)의 지점을 살펴보는 겁니다.

 

이런 지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써 볼까 해요. 원래는 오늘 새해 계획 달성률 높이기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이렇게 흘렀네요. 하지만 결국은 ARN을 통한 자아강화가 있을 때 꾸준히 해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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